스푸트니크 1호 — 우주 시대의 시작

  • 우주 탐사
  • 1957

1957년 10월 4일, 지름 58cm의 금속 공 스푸트니크 1호가 사람이 만든 물체로는 처음으로 지구 둘레를 도는 궤도에 올랐습니다. 이 위성이 보낸 ‘삐- 삐-’ 신호가 세계 곳곳의 라디오에 잡히면서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.

스푸트니크 1호 — 우주 시대의 시작
사진: Wikimedia Commons — Sputnik 1

이 이벤트 이야기

1957년 10월 4일 밤, 지금의 카자흐스탄에 있는 튜라탐 발사장(지금의 바이코누르)에서 소련의 R-7 로켓이 발사되었습니다. 로켓 끝에는 지름 58cm, 무게 83.6kg의 반짝이는 금속 공이 실려 있었습니다. 이 공이 궤도에 오르면서, 사람이 만든 물체가 처음으로 지구 둘레를 도는 인공위성이 되었습니다. 이름은 스푸트니크 1호였습니다.

스푸트니크 1호는 약 96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. 궤도는 동그란 원이 아니라 길쭉한 타원이어서, 지구에 가장 가까울 때는 약 215km, 가장 멀 때는 약 939km 높이였습니다. 위성은 두 가지 주파수로 ‘삐- 삐-’ 하는 짧은 신호를 계속 보냈습니다. 아마추어 무선가들은 집에서 라디오로 이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.

많은 사람이 새벽과 저녁 하늘에서 ‘인공위성’을 눈으로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.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이 본 밝은 점은 대부분 위성이 아니라, 위성과 함께 궤도에 오른 R-7 로켓의 큰 몸통이었습니다. 작은 공은 햇빛을 받아도 맨눈으로 겨우 보일 만큼 어두웠지만, 긴 로켓 몸통은 훨씬 밝게 빛났기 때문입니다.

스푸트니크 1호의 수명은 짧았습니다. 배터리로 움직였기 때문에 약 3주 뒤인 10월 26일 배터리가 다 닳으면서 신호가 멈추었습니다. 그 뒤로도 지구를 계속 돌다가, 공기와의 마찰로 조금씩 낮아져 1958년 1월 4일 대기권에 들어가 타 버렸습니다. 그 사이 지구를 약 1,440바퀴 돌았습니다. 별자리뷰에서 인공위성 표시를 켜면 오늘날 지구 둘레를 도는 위성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재현됩니다.

임무의 목표

스푸트니크가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위성 자체보다 그것을 쏘아 올린 로켓 때문이었습니다. 스푸트니크를 실어 나른 R-7은 원래 핵무기를 다른 대륙까지 날려 보내기 위해 만든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었습니다. 83kg짜리 공을 궤도에 올릴 수 있다면, 핵탄두도 바다 건너 멀리 보낼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. 그래서 미국 정부와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고, 이 충격은 ‘스푸트니크 쇼크’라는 말로 남았습니다.

이 충격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. 미국은 1958년 1월 첫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쏘아 올렸고, 2월에는 첨단 연구를 맡을 국방 기관 ARPA를 만들었습니다. 7월에는 우주 개발을 맡을 미국항공우주국(NASA)을 세우는 법이 만들어졌습니다. ARPA가 지원한 연구는 뒷날 인터넷의 바탕이 된 컴퓨터 통신망으로도 이어졌습니다.

과학에도 남긴 것이 있습니다. 위성의 전파가 지구 위쪽의 전기를 띤 공기층을 지나며 변하는 모습은 그 층을 연구하는 자료가 되었고, 위성이 공기 저항으로 낮아지는 속도에서 높은 하늘의 공기 밀도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. 또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연구진은 위성 신호의 높낮이 변화로 위성의 위치를 계산하는 방법을 찾아냈는데, 이 방법이 위성 항법 시스템인 트랜싯으로 이어졌습니다.

임무 연대기와 배경

스푸트니크 1호는 처음부터 계획된 위성이 아니었습니다. 소련은 원래 여러 과학 장비를 실은 무거운 위성을 준비하고 있었는데, 이것이 뒷날의 스푸트니크 3호입니다. 그 개발이 늦어지자 미국보다 먼저 궤도에 오르기 위해 훨씬 단순한 위성을 서둘러 만들었습니다. 그 안에는 송신기와 배터리, 온도 조절 장치 정도만 들어 있었고, 겉에는 안테나 네 개가 뻗어 있었습니다.

한 달 뒤인 1957년 11월 3일에는 스푸트니크 2호가 개 라이카를 태우고 올라갔습니다. 라이카는 궤도에 오른 첫 동물이었지만 돌아올 방법이 없었고, 발사 몇 시간 뒤 과열로 죽었습니다. 미국의 첫 시도였던 뱅가드 TV-3는 12월 6일 발사대에서 조금 떠오르다 폭발했습니다. 미국은 1958년 1월 31일 익스플로러 1호로 첫 위성을 올렸고, 이 위성은 지구를 둘러싼 방사선대인 밴앨런대를 발견했습니다.

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린 R-7 로켓을 개량한 로켓은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. 소유즈 로켓이 바로 R-7 계열로, 우주비행사와 화물을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실어 나릅니다. 1957년에 처음 날아오른 설계가 70년 가까이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. 스푸트니크가 발사된 10월 4일은 지금도 세계 우주 주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.

어디서 볼 수 있나 — 하늘과 시뮬레이터

스푸트니크 1호는 1958년 1월에 타 버려서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. 하지만 그 뒤를 이은 수많은 위성은 지금도 하늘을 지나갑니다. 별자리뷰에서 인공위성 표시를 켜면 국제우주정거장(ISS)과 밝은 위성들이 실제 궤도 자료를 바탕으로 그려집니다. 1957년 사람들이 스푸트니크의 로켓을 보았던 것처럼, 별 사이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빛나는 점이 재현됩니다.

인공위성은 아무 때나 보이지 않습니다. 위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고 햇빛을 반사해서 빛나기 때문입니다. 그래서 해가 진 뒤 1~2시간이나 해가 뜨기 전 1~2시간처럼, 땅 위는 어둡지만 높은 곳의 위성에는 아직 햇빛이 닿는 때에만 잘 보입니다. 한밤중에는 위성이 지구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습니다. 1957년의 조건도 지금과 똑같았습니다.

스푸트니크의 ‘삐- 삐-’ 소리는 녹음으로 남아 있어서 지금도 들을 수 있습니다. 약 20MHz 주파수의 이 신호는 당시 단파 라디오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. 소리 사이의 간격에는 위성 안의 온도와 압력에 대한 정보도 담겨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. 짧은 신호음 하나가 온 세계에 새 시대가 왔음을 알린 셈입니다.

자주 묻는 질문

스푸트니크 1호는 얼마나 컸나요?

지름 58cm, 무게 83.6kg의 금속 공이었습니다. 겉에는 2.4~2.9m 길이의 안테나 네 개가 뻗어 있었습니다.

맨눈으로 보였나요?

위성 자체는 겨우 보일 만큼 어두웠습니다. 사람들이 본 밝은 점은 대부분 함께 궤도를 돌던 R-7 로켓의 몸통이었습니다.

신호는 얼마나 오래 보냈나요?

약 3주 동안, 배터리가 다 닳은 10월 26일까지 보냈습니다. 위성은 1958년 1월 4일 대기권에 들어가 타 버렸습니다.

미국은 왜 그렇게 놀랐나요?

스푸트니크를 올린 R-7이 핵탄두를 다른 대륙까지 보낼 수 있는 미사일이었기 때문입니다. 이에 대응해 ARPA와 NASA가 만들어졌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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